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제국 (문단 편집) === [[대정봉환]] 이전 === [include(틀:상세 내용, 문서명=대정봉환)] || [[파일:external/visualta.files.wordpress.com/d0b4d0b0d0b9d0b3d0bed180d18dd0b9.jpg|width=100%]] || || 1868년(게이오 4년) 왕정복고의 대호령[* 이 칙령을 통해 바뀐 국체는 국가원수가 황제인 [[제국]]이었지만, [[https://dl.ndl.go.jp/pid/787948/1/9|해당 조문]] 상에서는 제정복고가 아닌 왕정복고라는 단어를 썼다.] || [[에도 막부]]는 중국, 조선, [[류큐]] 등을 비롯하여 역사적으로 알고 지냈던 주변 극소수의 국가와 [[네덜란드]]를 빼면 통상 교역을 금지한 해금(海禁) 정책을 폈다. 이는 [[도쿠가와 막부]]의 영향력 강화에 기여했으나, 시간이 흐르면서 [[러시아]], [[미국]], [[영국]], [[프랑스]] 등 서구 열강이 지속적으로 밀고 들어오자 점차 해금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왔다. 당시 일본 특유의 정치 체제인 幕藩体制[* 사실 정자로 쓰고 '幕藩體制(막번 체제)'라고 읽는 게 딱히 틀린 용법은 아니지만 현대 [[일본어]]에서는 한국어 맥락에서의 정자체(구자체) 體 대신 신자체 体를 쓴다. 과거에는 일본도 전자로 쓰긴 했다. 또한 체제의 이름 역시 고유 명사에 가까우므로, 신자체로 쓰고 '바쿠한 체제'라고 읽는 게 좀 더 정확하다.](막번 체제)를 먼저 알아야 한다. 에도 막부는 [[다이묘]]가 다스리는 번(藩)들의 자치를 제한적으로 인정하면서 이들을 막부에 철저하게 종속시키고,[* 볼모를 보내고 그친 게 아니라 [[참근교대|번주가 에도에 주기적으로 와야 했다.]] 그 이동에는 당연히 막대한 비용과 엄청난 시간이 들었다.] 번들의 경쟁을 이끌어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중앙 집권적 효과를 노리는 정도에 그쳤다. 시간이 흐르며 점차 에도 막부의 영향력이 쇠퇴하고, 반대로 지방 번들의 세력들이 성장했다.[* 일본은 최소 6세기 이후 황통의 교체는 없었지만, [[헤이안 시대]] 이후부터 중앙 집권과는 거리가 멀었다.] 이러한 상황에서 세력이 강해진 번을 웅번이라고 하는데 이 웅번들 가운데서도 특히 [[사쓰마]], [[조슈 번|조슈]], [[도사 번|도사]], [[사가현|히젠]] 4개 번이 그 기세가 가장 강대하였다. 이들은 서구 열강과의 밀무역으로 근대적인 산업 시설이나 무기들을 도입하였고, 재정적인 부를 축적하였다. 이런 상황에서 에도 막부는 다시금 왕년의 전성기를 회복하고자 3대 개혁을 폈지만 모두 실패했다. 경제의 혼란, [[무사(역사)|무사]](특히 하급 무사)의 [[잉여]]화, 새로운 문물과 [[학문]]에 따른 [[정치]]적 각성, [[페리 제독]]의 함포 외교, [[조슈 정벌]] 실패 등 여러 사건이 이어진 끝에 에도 막부는 그 정치력을 잃었다. 위에 말한 웅번들이 막부의 몰락에 한몫을 담당했다. 졸지에 사면초가 신세가 된 에도 막부는 도사 번의 건의를 받아들여 [[대정봉환]]을 단행하였으나, 사쓰마 번 등 급진파는 이후로 에도 막부의 [[쇼군]] [[도쿠가와 요시노부]]에게 내대신 사직과 막부령 반납을 지속적으로 강요했다. 동시에 쿠데타를 일으켜, 구 막부파가 지키던 [[교토고쇼]]를 점거하고 내대신 요시노부가 없는 상태에서 신정부를 출범한다. 이윽고 [[메이지 덴노]]에게 왕정복고의 대호령을 선언하게 하면서 요시노부를 정치권에서 완전히 내쫓는 데 성공한다. 이후 1868~1869년 사이에 벌어진 [[보신전쟁]]을 통해 구 막부 잔당들을 완전히 몰아내어, 새롭게 정치판의 강자로 떠오른 웅번들은 [[판적봉환]][* [[다이묘]](번주)들의 '영지(領地)'와 '영민(領民)', 즉 '판적'을 [[천황]]에게 반환.]과 [[폐번치현]][* 지방 통치를 담당하였던 번을 없애고 그 자리에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부(府)와 현(縣)을 설치.]을 단행([[메이지 유신]])했다. 그리고 지방 영주가 스스로 중앙 귀족에 올랐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